'이도공간(異度空間 Inner Senses, 2002)'이 배우 장국영의 마지막 영화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에서야 이 영화를 보게되었습니다.

장국영이 출연한 영화를 좋아하고 그 영화 속의 장국영을 좋아했지만 정작 배우 장국영에 대한 팬심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같이 떠난 배우 장국영을 생각하게 되니 뒤늦게 아픔이 몰려옵니다.

 

 

장국영이 마지막으로 출연한 영화 '이도공간'은 이제껏 장국영 영화에서 전혀보지 못했던 공포 스릴러 장르의 영화입니다. 이 영화 제작 당시 홍콩에서 공포 영화라는 장르가 인기를 얻으면서 유행처럼 제작된 감이 있긴하지만, 장국영이 공포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은 여전히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도공간'은 단순한 공포 스릴러 영화는 아닙니다.

남자에 집착을 보이다 헤어진 뒤 귀신을 보게 된 여자 얀(임가흔 분)은 많은 자살 시도를 했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상태로 새롭게 시작하고자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됩니다.

하지만 아파트 주인 주 선생(서소강 분)이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산사태로 죽었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면서, 얀은 주 선생의 죽은 아내와 아이의 귀신을 보기 시작합니다.

 

정신과의사인 짐(장국영 분)은 귀신은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물로, 과거의 잊혀진 기억은 다 이유가 있어서 개인이 감춰둔 것이니 꺼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사 친구 진위중(이자웅 분)이 자신의 처제인 얀(임가흔 분)의 치료를 부탁하자 얀과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치료하기 시작하는 짐(장국영 분). 얀은 치료과정에서 짐에 대한 집착을 보이다 결국 다시 자살 시도를 하지만, 그 후 짐에 대한 집착을 떨쳐내며 더 이상 귀신을 보지않게 되었고 치료는 끝나게 됩니다.

 

이 때까지의 내용으로 보면 그렇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음산함 속에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공포스런 분위기는,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내세우며 억지로 깜짝 장면을 보여주는 매니리즘화된 공포 영화들보다는 훨씬 더 공포스러운 공포 스릴러 영화였습니다.

영화 '이도공간'은 나지량 감독의 연출에 맞춰 얀 역을 맡은 배우 임가흔이 이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도공간'의 아이러니함까지 보여주며, 공포영화다운 만족감과 실망감을 동시에 보여주게 됩니다. 

 

 

영화 초반에 보여준, 스산한 분위기와 절제된 장면들이 선사하는 심리적 스릴은, 영화 후반에 등장하는 어색한 귀신의 모습(분장의 어색함)으로 결국 퇴색되고 마는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제대로 전하기위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후반의 주요 핵심 내용도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자웅(진위중 역)과 주가령(설아 역)

 몽유병 환자의 모습을 선보이는 장국영

 

 

 

얀(임가흔 분)은 남자에 대한 집착을 떨쳐내고 퇴원하게 됩니다. 

얀의 형부 진위중(이자웅 분)과 언니 설아(주가령 분)는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얀과 짐)을 이어줍니다. 진위중 외에는 다른 친구는 만나지 않고 오직 혼자 책만 일고 지내던 짐은 얀과 즐거운 날들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낯선 노부부가 그에게 다가와 유리잔으로 머리를 내려치게 되면서 자신 깊이 감춰줬던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조금씩 떠올리게 되는 짐.

 

그즈음 얀(임가흔)은 짐(장국영) 함께 생활을 하기 시작하는데, 짐이 몽유병을 겪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 몽유병 환자 연기를 하는 장국영의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얀은 짐이 몸유병을 겪고 있음을 깨우쳐주게 되고......

그러던 어느날 다시 몽유병 증세를 보이며 무엇인가를 열심치 찾아 펼쳐놓는 짐을 보고 자명종을 이용해 짐을 깨우는 얀. 하지만 짐이 펼쳐놓은 것들 중에는 학생 때 자살한 여자 친구의 피묻은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짐 스스로는 오래 전에 태워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이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기억 속 깊이 감춰버린 것이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귀신은 인간의 경험과 생각이 만들어낸 착시이며 스스로 숨겨놓은 과거의 끔찍한 기억은 애써 들쳐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정신과의사(장국영)과 치료를 통해 귀신이 존재하지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얀(임가흔)이 함께 보게 되는 귀신을 통해, 심리물처럼 흘러가던 영화가 심령 공포물로 바뀌게 됩니다.

 

장국영과 임가흔이라는 훌륭한 배우가 있고, 영화가 담고있는 내용도 제법 괜찮아 제대로 다듬었더라면, 오래도록 손꼽히는 멋진 공포 스릴러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인데 아쉽습니다.

 

1990년대 홍콩 영화 전성기의 중심에 있었던 훌륭하고 멋진 배우, 장국영. 

당신이 떠난지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그때처럼 여전히 아름답기만 합니다.

장국영, 당신이 살다간 이 세상은 아름다웠습니까?

오늘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당신이 남긴 그림자를 쓸쓸하게 밟았습니다. 

 

평점 : 8점 (8점을 주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지만, 장국영과 임가흔, 그리고 공포 스릴러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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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남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