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그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처음 삶과 죽음의 꼬리에 매달려 들어간 것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 것 같다. 여기저기 주워들은 종교의 죽음 이후를 생각하며 잠깐 빠져들어 갔는데 두려움이 엄습해 더 깊이 몰입하지는 못했다.

그 뒤, 아주 가끔씩 죽음 이후를 더 깊이 생각하자며 자신있게 대들어 보았지만 어김없이 치떨리는 두려움으로 생각을 접고 몸을 숨겨야 했다.

 

죽음 이후,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면, 또 그 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영원이란 이름으로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인가, 아니면 윤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생을 반복하는 것인가? 돌고 돌아 끝없이 반복된다고 한다면, 그 속에 담긴 나는 무엇이고 내 본질은 실재하는 것인가?

이런 인간의 간절한 바람이 한낯 위안으로 끝나 죽음 이후에 내 본질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지금의 나, 나는 짧은 시간의 한 켠에 잠깐 있다 사라질 것이 아닌가?

 

 

두렵다! 치떨린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짧은 시간 선상의 나는 조만간 어디에도 없게 된다는 사실이.

설령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고 죽은 뒤 내가 그 세계에 속하게 된다 하더라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시간이 영원이란 이름으로 계속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있음과 없음의 경계에서 지금처럼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할 것이기에.

 

"영원히 살면 뭔 걱정이야!" 쉽게 얘기를 하겠지만, 텅 비어버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영원이란 시간의 줄은, 육체는 있으나 그 속은 아무 것도 없는 나를 만들어 버리니 그것은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을테지.

 

사후가 어떻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후가 어떻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말이다.

 

착한 사람이 되어 천국으로 가는 것, 인간으로 환생하는 것을 얘기하며 지금 미리 준비를 하라며 현혹하는 종교들도 있지만, 지옥에서 고통받게 되거나 동물로 환생하게 되는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있으면서도 텅 비어버린 없음의 상태에 빠져있는 지금, 죽음 너머에서조차 텅 비어비린 나를 떠올린다는 것이 두렵다. 내 존재가 변화하며 계속 존재하더라도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기에 아주 두려운 것이다.

 

치밀어 오르는 극한 두려움을 한 번 느끼며 죽음 이후의 존재에 대해 잠깐 몰입해 보았다.

 

내가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언제나 현재가 중요하니 현재에 충실하자는 위안 뿐이지만, 생각의 질주가 시작되면 발디딜 곳 없는 허공에서 버둥거려야 한다.

 

애초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테지만, 한 번 빠져든 이상 삶의 길 위에 가끔씩 회오리치며 다가오는 씁쓸한 상념을 대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던져놓고 보니 한결 가벼워졌다.


 

2008년 10월 29일

- 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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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남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