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으로 이사온지 벌써 6년이 넘었는데도 늘 다니던 곳만 지나가다보니, 여전히 신기하고 낯선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이제 이곳 김천을 떠나기 전(언제가 될지???)까지 곳곳을 다니면서 기록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김천시 교동 연화지

벚꽃이 필 때 방문했더라면 더 운치가 있었을텐데 벚꽃이 물 속에 잠긴 뒤에야 이렇게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천으로 이사왔을 때는 '연화지'를 대충 보고 말았는데,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서 살펴보니 그 정취가 더욱 깊어집니다.

연화지를 둘러보다보면 아래 사진에서처럼 이곳에 관련된 시를 몇편 읽어볼 수 있습니다. 

 

 

김천시에서 연화지를 정비하면서 금산정이라는 정자도 만들었나 봅니다.

 

 

연화지.

김천시청 홈페이지의 내용을 보면 "조선시대 초기에 농업용수 관개지"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처음에는 작은 저수지였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좋다보니 '봉황대'를 옮겨오고 연못 가운데 멋스러운 섬도 만들어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연화지는 연꽃이 피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방방에 같은 이름으로 다수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곳 연화지가 특별한 이유는 지금 제가 살고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천시 교동 연화지

 

 

김천시 교동 연화지 - 360도 회전 촬영

 

 

김천시 교동 연화지

조선시대 초기에 농업용수 관개지로 조성되었던 교동 연화지는 물이 맑고 경관이 좋아 풍류객들이 삼산 이수를 형상화하여 못 가운데에 세개의 뫼 봉우리를 쌓아 만들고 정자(봉황대)를 지어 시인 묵객들이 모여 시를 읊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노닐던 곳이었다. 근래에 와서 농업 관개시설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다가 1993년 시민휴식공간으로 조성하였다. 봄이 되면 벚꽃이 장관을 이루며, 여름이면 시원스레 뿜어내는 분수는 무더위를 잊게 한다.

 

내용출처 : 김천시청 문화관광

http://www.gc.go.kr/culture/page.htm?mnu_siteid=tour&mnu_uid=3138

 

 

 

봉황대(鳳凰臺)

김항주(金恒柱)가 1776년 김산군수로 있을 때 하루는 꿈을 꾸었더니,봉황이 구화산 밑에서 날아가는지라 그곳이 길지라 하여 어는 건물을 헐어다가 정자를 짓고 이름을 '봉황대(鳳凰臺)'라 하였다고 한다. 지금의 연화지에 있는 봉황대는 1838년에 김산군수 이능연(李能淵)이 구화산 밑에서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내용출처 : 김천시청 문화관광

http://www.gc.go.kr/culture/page.htm?mnu_siteid=tour&mnu_uid=2848

 

 

봉황대(鳳凰臺)는 열쇠로 잠겨있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연화지 안에 있는 섬과 봉화대를 들어가 보고 싶지만, 개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다보면 내부가 훼손되거나 간혹 장난치다 물에 빠지게 되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쉽지만 먼곳에서 사랑스런 마음으로 바라만보는 것이, 도시에서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타다보면 자연은 힘없이 시드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 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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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남김없이